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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신분 쓰세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따르면 고구려의 체제정비와 중앙집권화를 이룩한 것은 제6대왕인 태조왕때이다. 태조왕대에 왕권 세습의 기틀이 마련되었으며 주변 소국들을 복속시켜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고, 부족국가에서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는 초기 국가 형태를 보이게 되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의 초기 전성기를 이룩한 태조왕은 53년 즉위하여 146년까지 왕위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상식적으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대에도 100살을 넘게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지금보다 훨씬 평균수명이 적었던 2000년전에 왕이 100살을 넘게 왕위에 있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삼국사기』에 따르면 태조왕은 146년 동생인 수성(차대왕)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165년까지 생존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태조왕은 120년을 넘도록 생존해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태조왕의 동생인 차대왕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기는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76세에(146년) 즉위하여 왕으로서 집무를 본 것이 된다. 그러나 태조왕뿐만 아니라 그 동생인 차대왕도 70을 넘는 나이까지 살았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또한 76세의 나이인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도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삼국사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역대 고구려왕 계보도에 나와있는 태조왕의 즉위기간과, 태조왕-차대왕의 관계에는 많은 의문점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이하에서는 이 기록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해 논의해보겠다. 태조왕의 즉위와 왕위계승도 고구려 초기 왕위계승도에 따르면 제2대 유리왕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다. 그 중 대무신왕이 제3대 왕위를 잇게 되었고, 그는 자신의 아들 해우를 태자로 삼았다. 그런데 대무신왕의 아들인 제4대 민중왕이 태자의 자리를 뺏고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5년만에 사망하고 이전 태자였던 해우가 왕위에 즉위하니 그것이 제5대 모본왕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모본왕은 성정이 포악하고 국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모본왕 6년 두로라는 자에게 시해되었다고 적고 있다. 모본왕은 아들 익을 태자로 정해놓았기 때문에 그가 왕위를 계승했어야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일곱 살 된 궁(宮)이 왕으로 추대되게 되는데, 그가 곧 제6대 태조왕이 된다. 왕위계승도에 의하면 태조왕은 제2대 유리왕의 막내아들인 재사라는 사람의 자식으로 되어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모본왕의 아들인 태자 해익이 불손하여 나라를 맡을 수 없음으로 나라의 사람들이 궁을 추대하여 왕으로 삼았다. 그때 태조왕의 나이가 7세였으므로, 어머니 부여태후가 수렴청정을 했다'고 되어있다. 즉,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태조왕은 유리왕의 손자뻘이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태조왕이 7세에 즉위한 해는 47년이 된다. 태조왕은 갈사국, 조나, 주나 등을 정복하였고, 동옥저, 현토를 정벌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함으로써 동으로는 책성, 남으로는 살수에 미쳤다. 특히 요동에 진출하여 요서 10성을 쌓아 한의 동진을 막았으며, 부여를 앞세워 한나라와 대결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태조는 북쪽으로 부여와 서쪽으로 서안평, 남쪽으로 동해(옥저)에 진출하여 고구려가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146년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며, 165년까지 살다가 사망하였다. 그러나 앞서 말할 바와 같이 보통 사람이라면 이 기록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전부 진실이라고 전제한다면 제2대 유리왕의 막내아들인 재사는 아들 3명을 두었고, 이들이 곧 태조왕 차대왕 신대왕이다. 그런데 태조왕은 서기 53년에 7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동생 차대왕은 146년 왕위에 올랐는데 그 때 나이가 76세였으니 서기 72년에 태어난 것이 된다. 신대왕은 165년 왕이 되었을 때 77세라고 하였으니 서기 89년에 태어난 것이 된다. 그렇다면 태조왕과 동생 신대왕은 무려 40살이 넘는 나이차를 갖고 태어난 것이 된다. 이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문제의 해결방법에 관하여 여러 가지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태조왕 재위기간에 대한 견해들 태조왕이 실제 120살을 살았을 수 있다는 견해가 있을 수도 있다. 기록상 재위기간과 생몰년도가 분명히 나와있는 이상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을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다른 자료인 『해동고기』라는 책에 태조왕이 94년간 재위하고 100세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명백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선 『삼국사기』의 기록이 믿을만하지 않다는 것은 여러 사정을 통해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삼국사기 자체에 이미 김부식이 " " 라고 서술하여 삼국사기를 저술할 당시에도 이 사실에 대해 의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후한서』에는 '서기 121년에 태조왕이 죽고 아들인 수성이 왕위에 즉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기록 자체에서 태조왕의 즉위기간과 생몰년도에 문제가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신채호선생 역시 태조왕과 수성의 아버지인 재사가 왕이 아니였는데도 어째서 <삼국사기>에서 수성을 왕제라고 하지 않고 왕자라고 불렀는가. 그리고 아들 태조왕의 섭정을 아내에게 맡길 정도로 노약했을 재사가 어떻게 태조왕과 20년이나 터울이 지는 수성을 낳을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점들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태조왕의 비상식적인 재위기간을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일설은 고구려의 건국시기와 관련하여 태조왕의 비상식적인 재위기간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는 주로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먼저 주장하여 계승된 논의로서, 고구려가 추모왕이 건국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제6대 태조왕대에 건국되었다는 주장이었다. 즉,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함에 있어서 실제 서기 1-2세기경의 고구려건국시기를 200년 정도 앞당겨서 거짓된 기록을 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 학계에서 적지않은 사람들이 태조대왕 궁을 고구려의 실제 건국시조로 여기어 삼국사기에 기재된 태조왕 이전의 왕계보는 후세 사람들이 위작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태조왕 이전의 왕들이 '해'씨를 사용했고, 태조왕 대부터 왕들이 '고'씨를 사용했음을 근거로 하여 태조왕을 기점으로 고구려 왕실이 교체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 태조왕이 고구려의 건국시조라거나, 새 고구려 왕실의 시조라고 한다면 이전의 주몽왕계와의 연관성을 맞추는 과정에서 태조왕대의 재위기록이 조작될 가능성을 충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고구려 건국년도를 별다른 증거없이 무시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함에 있어서 신라 정통론에 입각해 신라의 건국년도를 고구려, 백제보다 이전으로 앞당겨 기록했다거나, 신라 건국년도를 갑자년에 맞추기 위해 건국년도를 조작했다는 이야기는 있어왔다. 그러나 이 때 건국년도의 오류는 약 몇십년 정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지 200년 가까이 건국년도를 조작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광개토대왕릉비 등 현존하는 금석문 자료의 기록에는 분명히 고구려는 주몽이래 단일 왕계를 이룩하여 왔음이 명시되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태조왕이전 왕계가 조작되었다는 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른 견해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집필함에 있어서 과거의 사료를 찾던 도중 몇가지 사료를 찾지 못하여 사실이 빠지고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어서 모든 사실관계가 명백히 나타나 있는 사료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고대사로 가게 되면 기록이 불완전하여 역사기록에 있어 오류가 개입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실제로 고대사에 있어서는 사료의 불충분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미제로 남아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기록들 중에는 왕의 즉위와 사망에 대한 기록들도 들어간다. 만약 국왕이 즉위했다는 기록, 사망했다는 기록이 누락되게 되면 이미 사망한 국왕이 계속하여 재위중에 있는 것으로 사서가 편찬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고구려 초기 고대사에 대한 연구와 사료가 불충분한 점을 근거로 하여 태조왕대를 기록함에 있어 몇 명의 국왕에 대한 기록이 누락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즉, 일반적 견해에 따르면 삼국사기에 태조왕 본기라고 기록되어 있는 94년 동안에는 실제 여러 명의 왕들이 존재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집필함에 있어서 이들 기록을 빠뜨린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는 고구려 건국 초기에 5부족 체제의 대립이다. 고구려는 소노부, 계루부, 절노부, 관노부, 순노부라는 5부족이 연합하여 설립된 국가였다. 그런데 건국 초기에는 소노부가 정권을 잡고 있었다. 제2대 유리왕의 처가가 소노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3대 대무신왕부터 제5대 모본왕까지 고구려왕의 성씨는 '해'씨였다. 그런데 제6대 태조왕대에 와서 드디어 계루부가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태조왕부터 고구려 왕의 성씨는 '고'씨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소노부의 세력은 강력하였고, 계루부로써는 중앙집권과 왕권강화를 통하여 기껏 획득한 정권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다. 따라서 이 와중에 태조왕이라는 강력한 단일의 국왕 한 명을 만들어 내어 계루부 고씨의 왕위계승권과 정통성을 무리를 해서라도 일치시키려는 목적하에 태조왕대의 기록이 삭제되거나 왜곡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태조왕 대에 이루어진 여러 가지 업적들이나 중앙집권정책은 계루부 출신의 몇 명의 왕들이 이룩해놓은 것들은 '태조왕'이라는 이름아래 한 국왕의 업적으로 묶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이런 정치적인 해석을 하지 않더라도 태조왕대에 실제 임금 몇 명이 더 즉위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위서』,「열전」, 고구려조에 따르면 '막래의 자손이 대대로 왕위를 이어 후손 궁에 이르렀다'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막래는 시해당한 제5대 모본왕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궁은 제6대 태조왕을 의미하므로 제5대 왕과 제6대 왕 사이에 '대대로 왕위를 이어'라는 구절이 있다는 것은 두 임금 사이에 실제 임금이 몇 명 더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 다른 견해는 중국의 역사서인 후한서의 기록을 믿자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서인 후한서에는 태조왕이 7살에 왕위에 올라 임금노릇을 69년간 하다가 76세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제7대 왕이 되는 차대왕 수성은 태조왕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태조왕은 121년 76세의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고, 그 때부터 태조왕의 아들인 차대왕이 즉위하여 고구려를 통치한 것으로 보자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수성이 태조왕의 동생이 아니라 아들일 뿐, 왕계보는 변하지 않고, 다만 제7대 차대왕의 재위기간만 약 20년 늘어나게 된다. 태조왕대의 역사에 대한 고찰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삼국사기에 나타나 있는 100여년의 태조왕 재위기간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여러 견해가 상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여러 가지 견해가 대립되고 있는 것은 고구려 고대사, 태조왕 시대에 대한 자료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태조왕대를 기록함에 있어 참조했다는 해동고기라는 책은 지금 전하지도 않고 있다. 실제 현재 고구려사에 대한 기록이 명백히 남아 있는 것은 삼국사기 한 권 뿐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태조왕이 실제 100살을 넘게 살았는지 94년 동안 왕위에 있었는지 여부는 추측을 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본 견해들 중 어떤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선 앞서 말한바와 같이 태조왕이 고구려의 시조라는 견해는 취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성씨가 다르다는 이유 내지, 태조왕 이전 왕들에 대한 기록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만으로 태조왕을 고구려의 실제 건국시조라고 단정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또한 현재 얼마 남아있지도 않은 고구려사에 대한 기록인 삼국사기나 광개토대왕릉비는 모두 주몽을 고구려의 시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태조'라는 칭호가 일반적으로 건국왕에게 붙여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얼마 안되는 명문의 기록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왕계 교체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광개토대왕릉비에는 분명히 고구려는 주몽 이래 단일 왕계를 이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태조왕과 그 이전 왕이 성씨를 다르게 쓴 것은 그 지지기반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하여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노부가 아니라 계루부가 고구려의 지배세력이자 왕을 보좌하는 중심세력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태조왕이 '고'씨를 사용한 것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물론 태조왕의 아버지로 기록되어 있는 재사라는 사람이 유리왕의 자식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견해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 견해가 맞다고 해도 재사 및 태조왕은 최소 주몽 왕계의 방계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다른 왕계가 들어섰음에도 국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그 이전 국가의 시조를 높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태조왕은 부여에 찾아가 유화부인(주몽의 모후)의 묘소에 참배를 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태조왕이 주몽의 직계는 아니어도 최소한 혈족에 속한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본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집필함에 있어서 몇 명의 왕을 빼먹었다는 주장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일단 상식에 부합하고 『위서』라는 명문의 기록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 계루부측에서 왕권 강화를 위해 소노부 출신 왕들의 기록을 삭제하고 이를 모두 계루부 출신의 태조왕의 치적으로 기록했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쓴 것은 태조왕대로부터 약 천년이 흐른 후이니, 김부식이 참조한 옛 자료들도 정확하고 완벽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태조왕 이후 고구려의 지배세력이었던 계루부에서 사료를 조작하였다면 김부식이 그러한 사료만을 접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이 견해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왕계보는 잘못된 것이 된다. 태조왕은 제6대 고구려왕이 아닐 수도 있고, 차대왕 이래 수많은 고구려왕의 왕위 순서는 몇 단계 뒤로 밀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우선 삼국사기의 기록, 그리고 삼국사기가 참조했다는 해동고기의 기록에 반한다. 왕위 계승에 관련된 기록은 고대 왕국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기록이 전승되지 않는다고 보기는 힘들다. 더욱이 계루부와 소노부가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였다는 사실이 있다고 하여, 그 점만을 근거로 계루부가 후세에 와서 왕계보를 조작하였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은 조금 과하다고 본다. 고대사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추측이 기록에 우선할 수는 없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한다. 왕이 여러명 있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태조왕대의 왕계보가 조작되었다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위에서 말했듯이 역사 연구에 있어서는 남아있는 사료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후한서의 기록은 불충분하기는 하나, 분명히 태조왕 궁이 121년 사망하였고, 그 아들 수성이 차대왕으로 즉위하였다고 되어 있다. 차대왕이 태조왕의 아들이라면 연수가 어느정도 이치에 부합한다. 태조왕은 80살 정도를 산 것이 되고(물론 이것도 장수한 것이다), 그 아들 차대왕은 121년 즉위하여 165년까지 약 40년 정도를 왕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태조왕과 차대왕은 다소 장수한 셈이 되지만, 이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의 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연대에 생존했던 손권이나 사마의 같은 인물들도 70세가 넘게 생존했었기 때문이다.(이들은 생몰년도가 명확하다) 김부식은 삼국사기 편찬에 있어서 후한서가 아니라 해동고기의 기록을 따랐으나, 나는 상식에 부합하는 후한서의 기록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후한서의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별 무리없이 모본왕-태조왕-차대왕에 이르는 고구려 초기 왕계보의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다. 결론 역사에 대한 공부를 하다보면 사료 부족 등으로 인하여 상식에 반하거나 의문이 가는 점들이 많다. 이는 분명 무엇인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기록이 조작되었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이런 태도는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고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있으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의 자세로서는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자칫 후세사람이 과거에 이랬었으면 좋았겠다는 희망을 역사에 반영시키거나 후세사람들의 편견, 무지가 개입될 염려가 있다. 물론 과거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그러나 태조왕대의 문제에 있어서는 후한서에 기록이 남아있고, 그 기록이 잘못되었다거나 조작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그 기록에 따라 태조왕이 121년에 사망하였고, 그 아들 차대왕이 왕위를 계승하였다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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