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에 뜬금없이 미국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이 디스트릭트9이다. 나름 저예산(3천만불?)인데다 홍보도 그닥 많이 안되서 미국에서 대박을 치고 나서야 우리나라에서 판권을 산듯하다. 그러니까 이제 개봉하지.. 아무튼 우리나라에서는 9월부터 버스 지하철 등 곳곳에다가 'Human only'따위의 광고를 뿌려대며 홍보를 해서 꽤나 유명한 영화가 되었다.
각설하고, 디스트릭트 9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실질적인 수도 요하네스버그에 만들어진 외계인거주구역의 이름이다. 어느날 갑자기 거대한 외계인 우주선이 요하네스버그 위에 나타났고, 그들은 엄청나게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외계인들은 개미같은 종족으로 우두머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집에도 못돌아가고 어쩔지 모르는 외계인들을 데려다가 분리해서 거주구역을 만드니 그것이 디스트릭트 9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대로(홍보덕택?) 남아공에는 실제로 '디스트릭트 6'라는 백인전용거주구역이 있었다고 한다. 아파르트헤이트라 불리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나라인 만큼 흑백분리구역 정도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남아공의 역사가 영화의 모티프로 알려져있고, 실제로 외계인은 곧 인종차별의 메타포로 그려진다. 흑인 혹은 이주노동자의 범죄, 마약, 매춘, 마피아 등은 그대로 외계인의 범죄와 고양이먹이(?), 나이지리아 갱단 등으로 치환된다.
하지만!! 디스트릭트 9의 뛰어남은 단순한 이런얘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건 내 예상을 완전 뒤엎은 것이기도 했다. 애초에 남아공을 무대로 삼은 것 자체에서 정치냄새를 풀풀 풍기기에 뻔한 정치적인 얘기에 집착할 줄 알았는데, 이 문제는 단순히 영화의 여러 모티프 중 하나일 뿐이었다. 어쩌면 뻔하디 뻔한 교훈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흘러들어가 그저그런 이야기로 전락할 수도 있었는데, 디스트릭트 9은 이런 함정을 잘 피해갔다. SF오락영화로서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주제의식도 놓치지 않고, 게다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도깊은 이야기를 하면서 균형추를 잘 잡았다. 이것은 결국 감독의 역량이고, 스토리텔링의 승리라고 말할 수밖에.
외계인 거주구역이란 오리지널 스토리는 얼핏 들으면 꽤나 신선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어디서 많이 보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일단 도시위의 거대한 UFO는 인디펜던스데이를 생각나게 하고, 외계인의 모습도 여느 헐리웃 영화의 외게인에 비해 파격적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인종문제, 강제퇴거 같은 얘기는 '외계인'이 그 대상이란 점만 제외하면 역시 색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게다가 감염 이야기나 군수산업체의 음모, 인체실험 이야기 역시 뻔한 헐리웃의 이야기이다. SF의 생명이 독창성에 있다고 한다면 디스트릭트 9은 대단할 것이 없다.
그런데 그 익숙한 소재들을 잘 배치하니 정말 빼어난 영화가 탄생했다. 어찌보면 메멘토와 닮았다고 할까나. 메멘토 역시 그 영화를 시간순서대로 나열하면 정말 아무짝에도 특이할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시간선을 비틀어 편집함으로써 희대의 걸작이 되었다. 디스트릭트 9역시 마찬가지이다. 디스트릭트 9은 시간선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는 않지만, SF에 다큐멘터리 적인 편집을 하는 흔치 않은 도입부터, 마치 실화를 보는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결말까지 SF영화치고는 정말 실험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결과는 대박. 아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은 적절하게 맺고 끊는 것에 있겠지만.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무겁지 않게 풀어나간 것도 괜찮았고, 정말 짜증나는 주인공 캐릭터도 공감가게 만들었다. 사실 슈퍼맨보다는 이게 훨씬 공감가는 인간의 모습이니까.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말도안되는 이야기인데도 관객으로 하여금 진짜 요하네스버그에 우주선이 떠있고 디스트릭트9이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곧 디스트릭트 9이 잘만든 SF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매트릭스나 T2에 열광한 것은 (물론 가짜라는 것을 알지만) 어쩌면 저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내용이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슬픈 역사를 생각하면 딱히 덧할 말도 없지만.. 어떻게 보면 남의나라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주 노동자에 대해서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이대로 가면 한 30년 후에 한국영화에서도 이런 메타포가 등장하지 않을라나.
개인적으로 한가지 아쉬운 점은 막판의 액션씬이었다. 나는 영화관에 앉아서 주인공이 되어 게임 헤일로를 하고 있었다. (약간은 간츠느낌도 남) 일부로 그렇게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닥. (근데 사실 더 놀라운 것은 이 CG를 3000만불로 구현했다는 거다. 대체 성냥팔이소녀는 어디다 돈을 쓴걸까;;) 하지만 이정도는 옥의 티일 뿐. 충분히 SF의 걸작으로 남을만한 작품이다. 올해 나온 헐리웃 작품중에 가장 좋았다.
개인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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